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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비파

미카제 아이 × 현비파

  *드림주 외의 제 오리지널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노래의 왕자님 All Star 미카제 아이 루트 네타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연말 망년회가 열리는 날이다. 세리가 이번만은 반드시 정장을 입고 와달라고 얘기했다. 몸에 붙는 것은 불편하다고 말했지만 도무지 들어먹을 표정이 아니었다. 나름 불만을 표시하겠다고 문자도 보내봤지만 이번만은 어림없다는 반응이었다. 비파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그냥 크리스마스 파티에 불과하잖아요? 왜 정장까지 갖춰 입어야 해요?"


  세리의 차 옆에 서서 옷을 내려다보았다. 검은색 미니 드레스였다. 허리에는 연보라색 리본이 둘러져 있었으며, 추위 때문에 숄을 두르고 있었다. 안이 비치지 않는 검고 두꺼운 스타킹과 굽이 있는 검은 구두는 역시 어색했다. 다시 고개를 들어 세리를 보았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검은 바지와 남색 코트 사이로 보이는 갈색 목티였다. 비파의 입술이 한 자만큼 튀어나왔다.


  "세리씨는 왜 정장 안 입었어요?"
  "일 하다가 왔거든요."
  "원고 교정 아직 많이 남았나요?"
  "이번 주까지는 계속 할 것 같아요."


  비파는 다시 세리를 보았다. 세리는 운전석으로 돌아가면서 얼른 타라고 얘기했다. 조수석에 타서 내비게이션을 보았다. 내비게이션에는 목적지를 입력해달라는 메세지가 떠있었다. 세리가 안전벨트를 매고 차 시동을 걸 때 비파가 손을 뻗었다.


  "선생님, 장소 아세요?"
  "아니요."
  "그럼 아까 입력한 목적지는 뭐예요?"
  "내가 전에 아이랑 같이 갔던 의상샵이요."
  "네?"


  세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파는 그 시선에 아랑곳 않고 얼른 운전하라고 재촉했다. 세리는 고개를 기울이면서도 차 시동을 켰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목소리에 따라 좌회전, 우회전, 직진을 반복하다가 세리가 옆으로 한 번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파는 가만히 그녀를 보던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선생님은 이미 다 꾸미셨잖아요?”
  “나만 꾸미면 뭐 해요.” 
 “설마 저 때문이에요?”
  “아니면 갔던 곳을 왜 또 갈 거라고 생각해요?”
  “전 괜찮아요. 어차피 거기 오래 있을 것도 아닌데요. 선생님 데려다 드리고 음료수 한 잔 얻어 마신 후에 바로 출판사로 가야해요.”
  “편집장님께는 내가 말해뒀어요.”  “선생님!”  세리가 길가에 차를 세웠다. 동그랗게 뜬 눈은 곧 불만을 담고 실처럼 가늘어졌다.
  “전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니까요.”
  “그럴 순 없죠. 드레스코드를 정장으로 정했으면 다들 그렇게 입고 올 거 아니에요. 세리씨가 즐기지 못하고 간다고 해도 내가 입혀주고 싶어요.”
  “선생님.”
  “그동안 신세 진 것들 이번에 갚으려고 해주는 거니까 다른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요?”


  세리는 가만히 비파의 눈을 마주보다가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조금씩 빠르게 다가오는 눈앞 풍경들을 보며 비파는 슬그머니 웃었다. 손에 들고 있던 가방 안에서 진동 소리가 들렸다. 핸드폰이었다. 두 번 정도 울리더니 곧 끊어졌다. 액정화면에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이 떠있었다. 발신인은 미카제 아이, 연인이었다.

  비파.
  지금 스케줄이 끝나서 작업실로 향하는 중이야. 파티장에는 도착했어?

  잠깐 의상샵에 들렀다가 가려고 한다고 답을 보내고 폰을 가방 위에 올려두었다. 얼마 안 되어서 다시 진동이 들렸다. 아이는 전에 같이 들렀던 의상샵인지 묻더니 파티가 끝나면 데리러 가겠다는 말만 남겼다. 굳이 데리러 오는 건 위험하지 않느냐 물었지만 잘 감추고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비파는 불안함에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의상샵에서 세리에게 어울리는 드레스를 고른 후 파티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창 파티가 시작되고 있는 중이었다. 비파가 하기로 한 강연은 먼저 에피타이저 파티를 즐기고 난 후로 정해져 있었다. 적당히 즐기다가 시간이 되어 사람들 앞에 섰다. 마이크 앞에 서니 다시금 떨리는 목소리를 감출 수가 없었다. 시선이 모이면 모일수록 긴장하는 버릇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미리 간단하게 내용을 요약해서 가져왔지만 여기서 얘기를 꺼내면 말이 꼬일 것 같았다. 심호흡을 깊게 했다. 폐에서 나오는 숨마저도 떨리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숨을 들이마셨다. 그 때, 자주 듣던 청아한 목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진정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내 마음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도 아니었다. 아이를 생각하면서 떠올린 것도 아니었다. 그 낮은 목소리는 분명 이전에 ‘Starlight Memory’에서 들은 적이 있는 것이었다. 옆으로 돌아보니 가까운 곳에 모자를 깊게 눌러쓴 검은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서있었다. 분명 검은 머리카락은 본 적이 없었지만 항상 마주 섰던 키와 안겨있던 체격, 맑게 웃던 푸른 눈을 못 알아본다는 게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의 눈은 여느 때처럼 진지하게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심호흡하고.”


  심호흡을 할 것도 없었다. 이미 떨리던 손은 멀쩡해졌다. 비파는 대답하지 않고 마이크에 손을 가져갔다. 목소리 또한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강연을 무사히 마치고 박수를 받으며 자리를 나온 비파는 그를 찾았다. 그는 파티장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얼른 그쪽으로 달려가서 그 앞에 섰다. 그를 보는 눈동자가 떨렸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
  “데리러 온다고 했잖아?”
  “초대장은요?”
  “미나모토가 줬어.”
  “세리씨가요?”
  “비파가 많이 긴장한 것 같다고 와서 격려해달라고 하던데?”
  “내가 또 걱정을 끼쳤네요.”
  “당연하지.”


  아이가 비파의 손을 잡았다. 벨벳 천 장갑에 감싸인 손을 엄지로 어루만지며 그가 웃었다.


  “나는 비파의 연인인걸. 걱정하는 게 당연한 거야.”
  “고마워요.”


  비파도 거기에 마주 웃었다. 저녁은 먹었느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딱히 먹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잖아? 라고 반문했다. 비파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아이의 연인이잖아요. 걱정하는 게 당연하죠.”


  아이는 그 말에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곧 얼굴 전체로 번졌다. 웃음이 전염이 되듯 비파의 얼굴에도 꽃이 환하게 피었다. 마주 잡은 손은 놓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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