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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구름

니시노야 유우 × 니시하라 아야모

 “유우, 그거 알아? 대학교 입학식에는 정장 입고 가야 한다?”

 

 

 “에이, 거짓말. 그거 나 놀리려고 하는 소리죠?”

 “니시노야, 그거 진짜야.”

 “엑!”

 꽃샘추위가 찾아온 3월. 유우의 졸업식 날이었다.

 ***

 아야모의 졸업 후, 아야모가 입학한 대학에서 스포츠 추천을 받은 유우는 아예 진학으로 진로를 틀고 엄청난 노력 끝에 겨우겨우 성적을 맞춰 합격했다. 다른 2학년들도 모두 원하는 곳으로 진로가 결정되었고, 그것을 기념하여 그들의 졸업식 날엔 아야모를 비롯해서 작년 졸업생들도 모두 모여 졸업 축하 파티를 벌였다.

 “사실 난 니시노야가 대학에 갈 줄은 몰랐어….”

 “나도…. 우리 학교에 스포츠 추천받았다는 소리 듣자마자 떨어졌을 때 할 위로의 말부터 생각했다니까?”

 "아사히 상, 아야 누나. 너무하신 거 아님까?!“

 모두 왁자지껄한 가운데 아사히가 특유의 아련한 표정으로 서두를 꺼내자 아야모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얘기에 옆에서 2학년들과 떠들고 있던 유우는 자신의 얘기를 귀신같이 알아듣고는 홱 고개를 돌리며 항의했다. 그에 아야모를 대신해서 엔노시타가 태클을 걸었다.

 “니시하라 선배가 다니는 대학은 커트라인이 높으니까 당연하지.”

 “그쯤이야 문제없지! 가뿐히 통과했으니까!”

 “겨우겨우 맞췄으면서 뽐내지 마, 니시노야.”

 “치카라-! 사나이들의 약조를 이렇게 쉽게 어기다니!!”

 “겨우 맞추기라도 할 수 있었던 게 누구 덕분이더라?”

 “…치카라 스승님….”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던 유우는 결국 엔노시타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었다. 한 편의 개그 프로를 보는 느낌에 웃고 있자니 문득 유우가 대학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진학을 늦게 결심하고 그 후론 합격에만 매달렸던 탓에 유우는 대학에 관한 사소한 팁이나 상식 같은 것들을 알아볼 여유가 없었다. 무엇부터 얘기해줘야 하나, 싶어 잠깐 곰곰이 생각하던 아야모는 대학의 가장 처음인 입학식 드레스코드부터 알려주었다.
 처음엔 거짓말이라며 믿지 않던 유우는 한심한 것을 보는 엔노시타의 눈빛에 그제야 받아들였다.

 “이건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라고….”

 “류! 너도 이거 알고 있…!”

 한숨을 내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엔노시타를 뒤로하고 유우는 반사적으로 동지를 찾아 타나카에게 고개를 돌렸으나, 이미 알고 있었던 그는 어색한 미소로 유우의 시선을 피한 채  엔노시타의 등 뒤로 슬금슬금 숨어들었다. 배신당해 좌절한 유우의 어깨를 아야모가 조용히 토닥였다.

 “정장…. 없는데….”

 “뭐어, 나도 이맘때쯤 정장 맞췄으니까. 입학식 전까지 맞추면 되지!”

 “아야 누나…!!”

 구원자를 만난 듯 반짝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우는 귀여웠지만 정작 남자 정장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아야모는 자연스레 고개를 다이치 쪽으로 돌렸다. 따라 시선을 옮긴 유우가 다이치를 부르짖으며 그 앞에 무릎 꿇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

 입학식 시작은 9시. 입학식에 같이 가겠다고, 기숙사 앞에서 만나자고 한 시간이 8시. 아야모가 일어난 시각 8시 10분 전. 일어나자마자 시간을 확인하고 지른 비명은 꿀잠을 자는 룸메를 깨우고 말았다. 그녀의 짜증에 건성으로 사과하며 유우에게 늦잠 사실과 천천히 오라는 부탁을 전하려 했지만, 그녀의 휴대폰은 오히려 그가 이미 약속장소에 도착해 있다는 사실만을 알려주었다.

 [유우♡: 아야 누나! 저 너무 일찍 도착해버렸는데! 나는 괜찮으니까 천천히 와요!!] 오전 7:28

 다시 비명을 질렀다간 날아올 룸메의 베개가 무서워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른 그녀는 빠르게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휴대폰을 침대 위에 던지며 샤워장으로 뛰어갔다.

 [아야모: 유우 미안!! 나 지금 일어났어어ㅠㅠㅠㅠㅠ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나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ㅠㅠ 정말 미안해ㅠㅠㅜㅜ] 오전 7:53

 그리하여 오전 8시 27분.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모든 외출 준비를 마친 아야모는 머리도 덜 말린 채 급하게 핸드백을 낚아채고 기숙사 계단을 날듯이 빠르게 뛰어 내려갔다. 입을 옷을 미리 정해놓은 건 매우 잘한 일이었지만, 그것에 진이 다 빠져 알람 맞추는 걸 까먹고 잠들어버린 것은 뼈아픈 실책이었다. 머릿속으로 어제의 자신에게 비난을 쏟아내며 빠르게 걸어가던 그녀의 발걸음은 약속장소인 기숙사 앞의 벤치로 다가가면 갈수록 점점 속도가 느려졌다. 바람에 날린 머리를 정리하던 손길도 멈췄다. 이만큼 가까이 왔으면 그 특유의 헤어스타일이 보여야 하는데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아직 확인하지 않은 라인에 무슨 말을 남겨놓았을까 확인하려 고개를 숙인 순간, 볼에 무언가 차가운 것이 닿았다.

 “엄마야!”

 화들짝 놀라 휴대폰을 놓치자 누군가가 뒤에서 튀어나와 그녀가 놓친 휴대폰을 잡아챘다.

 “헉! 미안해요! 많이 놀랐어요…?”

 휴대폰을 다시 그녀의 손에 쥐여주며 걱정스럽게 얼굴을 살피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연인, 니시노야 유우였다. 오히려 자신보다 더 놀란 것 같은 그에게 괜찮다고 해주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그가 마시라며 다른 손에 쥐고 있던 것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오이오차캔이었다.

 “아, 아까 방금 이거…??”

 “누나 주려고 사온 건데….”

 그러면서 어깨가 축 처지는 것이, 꼭 풀 죽은 대형견 한 마리를 보는 것 같아 웃음이 배어 나왔다. 칭찬받고 싶어서 한 일인데 오히려 사고를 쳐버려서 칭찬받지 못해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응, 고마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네? 역시 유우밖에 없어~ 잘 마실게!”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골라 하며 조금 팔을 높게 들어 이제는 힐을 신어야 엇비슷해질 만큼 키가 커버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대번에 얼굴이 풀려서 실실 웃는 것이, 있을 리 없는 꼬리가 마구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에 마주 웃어주며 그만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바라보았다. 연애하면서부터 하도 쓰다듬었더니 그의 헤어스타일은 쓰다듬기 편하게, 소프트하게, 원래보다 조금 더 뒤로 뻗은 모습으로 변해갔지만, 여전히 뾰족뾰족하고 노란 앞머리를 따로 낸 것은 여전했다. 뭔가 고슴도치를 길들이는 느낌이 들었다는 건 그녀만의 비밀이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늦잠을 자 버려서….”

 “아니에요! 제가 너무 일찍 온 걸요. 주변에 볼 것도 많아서 마냥 심심하지도 않았어요!”

 “그래? 다행이다…!! 아, 그리고 이거 보자마자 해야 했던 말이었는데…. 정장 완전 잘 어울려!!”

 “진짜요?? 감사함다!”

 사실 아야모가 유우의 정장 차림을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남자 정장은 하나도 모른다며 다이치에게 모든 것을 맡겨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다이치나 유우에게 연락하면 얼마든지 정장 입은 모습을 볼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주는 서프라이즈 선물 같은 것이었다. 만나기 전에는 그를 보자마자 정장부터 칭찬하려고 마음먹고 있었으나 늦잠으로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린 데다가, 과하게 놀라버려 좀처럼 말할 타이밍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유우가 많이 기대하고 있을 텐데. 계속 입 안에서 맴돌던 말을 내뱉고 개운하다는 표정을 지은 그녀는 여기저기 옷매무새를 매만져주며 몇 가지 칭찬을 덧붙였다.

 “와이셔츠 목선도 잘 맞고, 자켓 어깨도 잘 맞고! 넥타이도 잘 어울리네~”

 그런 그녀의 말에 유우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마침 그녀가 정장에 관해 아무런 말이 없어 살짝 불안해지던 차였다. 다이치와 함께 간 정장 가게에서는 몸 여기저기에 줄자를 대어 치수를 재더니 이게 뭔지, 저건 또 어디 쓰는 것인지, 어느 게 더 좋은 것인지, 아는 것 하나 없는데 자꾸 선택지를 내어놓고 하나를 선택하라고 그러고. 중요한 경기에서도 침착하게 플레이하던 그가 정말 혼이 쏙 빠져나갈 만큼 정신없었다. 다이치가 없었다면 진작에 나가떨어져서 그곳에서 하라는 대로 다 샀을 것이다. 다이치는 그런 유우를 대신해서 적당히 좋은 것으로 적당히 알맞은 가격대로 합리적으로 골라주었고, 어차피 처음 입는 정장이라 어설프고 그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며 이번 정장은 그냥 평균적인 정장으로 하고 나중에 정장에 익숙해지고 많이 알게 되면 더 좋은 정장을 찾으라고 해주었다. 그래서 그렇게 정신없이 산 정장이 그녀에게 멋있게 보일까, 어색하지는 않을까, 하며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녀의 잘 어울린다는 한 마디에 그의 모든 불안 걱정이 사르르 녹아 사라졌다.
 나사 하나 빠진 듯 실실 웃는 유우의 모습에 아야모도 웃음이 전염된 듯, 같이 실실 웃게 되었다. 실제로 그는 군살 없이 몸이 탄탄하고 다이치나 아사히만큼 떡 벌어진 어깨는 아니지만, 각이 잘 잡혀 있어 옷걸이가 좋은 편이었다. 게다가 잘 다려진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넥타이, 검은 자켓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멋져 보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아직은 조금 어색한 감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그는 평소와는 분위기가 다르고 훨씬 더 멋져 보였다.

 “완전 멋있다, 우리 유우! 최고야!!”

 “에헤헤, 누나도 오늘 최고 예뻐요!”

 칭찬을 듣고 기분이 좋아진 유우는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그가 무엇을 봤는지, 무엇을 했는지 등등을 이야기하며 그녀와 함께 가벼운 발걸음으로 입학식이 진행될 체육관으로 향했다.

 ***

 입학식 시작을 얼마 남기지 않고 체육관에 도착한 두 사람은 도착하자마자 각자 흩어졌다. 유우는 자신의 과를 찾아갔고 아야모는 2층으로 올라가 유우가 잘 보이는 곳에 앉았다. 늦게 온 탓에 자리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혼자 온 덕에 남은 자리 중 시야가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목을 빼고 수많은 까만 정장을 입은 학생 중에서 그를 찾으니 그쪽에서도 두리번거리며 그녀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발견하자 약속이라도 한 듯이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손을 어깨높이로 들고 가볍게 흔드는 그녀와 달리 그는 팔 전체를 들어 올려 열심히 휘젓고 있었다. 정장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불편할 텐데. 아이 같은 모습에 작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는 사이, 입학식은 시작되었고 인사를 멈출 생각을 않던 그는 자기 옆자리에 앉은 학생이 말 몇 마디를 걸고서야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그제야 손을 내려놓으며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살펴보니, 대부분이 부모님들이고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카메라를 들고 즐겁게 웃으며 자신들의 아이를 사진에 담고 있었다. 그들을 보니 일이 바쁘셔서 못 온다고 하셨다는 유우의 부모님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거리가 거리다 보니 오시기 부담스러우셨던 것도 있을 것이다. 혹은 유우가 말렸거나. 똑같은 이유로 부모님 없이 치렀던 작년의 입학식을 회상하며 조금 쓴웃음을 지었다. 다이치가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지. 처음 뵙게 되어 약간 어색했던 다이치네 부모님과의 인사도 생각나서 잠깐 키득거렸다. 그들은 그 듬직하고 올바른 다이치를 키운, 정말로 좋은 사람들이었다. 아야모를 다이치의 여자친구로 오해해서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선약이 있어 입학식에 참가하지 못한 다이치는 대신 저녁에 스가, 아사히와 함께 보기로 했다. 키요코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미야기에 직장을 구한 키요코를 떠올리며 아쉬워하다 체육관에 울려 퍼지는 교가에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유우를 한 장 찍었다. 옆에 다른 사람과 웃으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살짝 흐릿하게 찍혔다. 조금 멀리 있는 탓에 확대해서 찍다 보니 화질이 깨져버렸다. 좀처럼 쓸 일이 없어서 기숙사 서랍 깊숙한 곳에 처박아 둔 카메라가 절실해졌다.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사진을 보다가 이거라도 찍기는 찍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휴대폰을 들어 촬영 버튼을 눌렀다.
 아야모가 그러는 사이, 유우는 아까 입학식이 시작한 것도 모른 채 손을 흔들던 자신을 말린 옆의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너도 체육교육과 신입생이야? 반가워! 나는 니시노야 유우야! 니시노야로 괜찮아.”

 “어, 응. 맞아. 나도 반가워. 나는 사카모토 카루이라고 해, 니시노야. 사카모토로 불러줘.”

 사카모토는 훤칠하게 생긴 호감형의 학생으로 키가 꽤 커 보였다. 다들 조용히 개식 인사를 듣고 있는 와중에 유우가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자 조금 당황하다가 마주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머리스타일도 그렇고, 조금 독특한 성격이라고 생각하다 아까 본 장면이 떠올라 질문을 던졌다.

 “아, 그런데 아까 너랑 인사하던 여자분, 되게 예쁘시던데. 누나?”

 “그렇지? 예쁘지? 여자친구야!”

 아야모의 칭찬에 유우의 얼굴에 팟, 하고 꽃이 폈다. 환하게 웃는 표정에서 하트나 꽃이라도 쏘아져 나오는 것 같은 느낌에 사카모토의 미소가 조금 어색해졌다. 와, 여자친구 진짜 좋아하나 보네.

 “그러니까 건드리지 마라.”

 어색한 사카모토의 표정을 뭐라고 생각했는지 단숨에 표정을 바꾸어 정색하며 바라보는 살벌한 눈빛에 그런 생각 한 적도 없지만, 앞으로도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마음먹었다. 와, 여자친구 진짜 많이 좋아하나 보네….

 “그, 그럴게….”

 “그래, 좋아! 아, 난 대학 배구팀에 스카우트 되어서 여기로 입학했어! 너는?”

 “나, 나도 배구팀으로 스카우트 됐어.”

 “오! 나는 리베로야! 너는? 윙 스파이커? 미들블로커?”

 “아니, 세터….”

 “세터! 세터 멋있지!! 잘 부탁해!!”

 “으응…!”

 그에게서 긍정의 답을 얻고 나서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배구 이야기 나오고부터는 하이텐션으로 올라간 유우에게 그는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어서 그의 페이스에 완전히 말려들었다. 체육관에 울려 퍼지는 교가가 우렁차게 내뱉는 유우의 목소리를 조금은 덮어주었다.

 ***

 길지 않은 입학식이 끝났다. 그사이 친해진 사카모토와는 메일 주소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처음부터 느낌이 괜찮은 녀석을 만나다니, 운이 좋은걸? 살짝 들떠서 미리 약속한 대로 체육관 입구 근처에 기대어 서서 아야모를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즐겁게 떠드는 아야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이치 상은 오늘 못 온댔는데? 그녀가 이렇게 마음 편히 얘기하는 상대가 얼마 없는 것을 알고 있는 유우는 조금 어리둥절해져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얼마 가지 않아 어떤 여자와 웃으며 얘기하는 아야모의 옆모습이 보였다. 자신이 모르는 그녀의 모습에 조금 불퉁한 기분이 되어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를 불렀다.

 “누나.”

 “아! 유우! 미안, 기다렸어? 친구를 만나서 조금 얘기하느라….”

 대화에 집중하느라 그제야 그를 발견한 아야모는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그제야 떠올린 듯 아! 소리를 내더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했다. 그래도 그의 불만스런 표정이 사라지지 않아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일단 둘을 서로 소개했다.

 “음, 어…. 나, 나나미! 이쪽은 내 남자친구, 니시노야 유우야. 방금 입학했어. 유우, 이쪽은 아시모리 나나미. 내 동기야.”

 “안녕하세요, 아시모리 나나미입니다. 아야모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침착하고 차분하던 애가 남자친구 얘기할 때는 어찌나 생기가 도는지~ 하도 얘기를 많이 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던 터라 누군지 정말 궁금했는데, 듣던 대로 굉장히 잘생기셨네요!”

 “저, 정말요…??”

 “나, 나나미…!!”

 가득했던 경계심은 아시모리의 이름을 듣고 나서 조금 풀렸다. 그녀는 아야모가 대학에 입학 후 처음 사귄 친구로, 대인관계를 힘들어하는 아야모를 많이 챙겨준 고마운 사람이라고 했다. 아야모와 대화하다 보면 꽤 자주 나오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인사 뒤에 자연스럽게 덧붙인 말은 유우의 경계심을 완전히 무너트렸다. 누나가, 내가 잘생겼다고 했어…? 그것도 엄청 많이…?? 아야모는 정작 유우 본인한테는 잘생겼다, 귀엽다, 멋지다 소리는 잘만 하면서 주변에 자랑은 하지 않는 편이라 조금 섭섭한 것도 있었는데, 자신이 없는 곳에서 몰래 자랑을 많이 하고 다녔다는 사실에 그런 섭섭함이 싹 풀리면서 엄청 기뻐졌다.

 “아, 안녕하세요, 니시노야 유우입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누나한테 아시모리 상 얘기 많이 들었어요! 아주 미인인 데다가 친절하기까지 하다고 누나가 아시모리 상 많이 좋아하더라고요.”

 “어머, 그래요?”

 “유, 유우…!!”

 옆에서 아야모가 무슨 그런 얘길 하냐면서 안절부절못하든 말든 두 남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숨겨둔 비밀이 밝혀져 부끄러움에 점점 얼굴이 빨개지는 귀여운 연인, 귀여운 친구를 바라보는 그들의 흐뭇함은 점점 커졌다. 그런 그들의 시선을 견디다 못한 아야모가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아시모리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아, 으, 아아, 우…!!”

 “푸흣! 알았어, 알았어. 그만할게. 난 이만 가볼게! 둘이 데이트 잘해~ 다음에 봐~ 안녕히 가세요!”

 “자, 잘 가!!”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그녀가 떠나고, 아야모는 아시모리가 건드리고 간 머리를 정리하며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유우에게 아시모리에 관한 것을 비롯해 이것저것 학교생활은 많이 얘기했지만, 이렇게 동기에게 그를 자랑하고 있었다는 건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는 비밀이라 엄청 부끄러워졌다. 조용히 땅만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 선 유우도 아무 말이 없자 조금 초조해진 그녀가 고개를 들어 흘끔 그를 돌아보다 눈이 딱 마주쳤다. 그러자 그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데이트. 가실까요, 아가씨?”

 정장을 입고서 허리를 조금 굽히고, 귀족들이 아가씨를 에스코트하듯 내민 손이 다가왔다.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이 조금 더 빨라졌다. 아무렴 어때. 잘생긴 건 사실인걸. 이렇게 잘생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잘 꾸미고 올 걸 그랬어. 잠깐 떠오른 상념과 후회는 그의 햇살 같은 미소에 지워졌고, 그녀는 해사하게 웃으며 그의 손 위에 부드럽게 손을 올렸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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