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산희

미도리마 신타로 × 하시모토 유메

* 리맨물입니다.

하시모토 유메는 서둘러 택시를 잡기 위해 달리고 있었다. 곤색 정장 치마에 굽 높은 하이힐도 그다지 그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하시모토에게 중요한 건 역시나 지각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겨우겨우 택시를 잡아 타서는 큰 소리로 기사에게 외쳤다.

“제약 본사로 빨리 가 주세요!”

하시모토의 다급한 말에 기사도 꽤나 속도를 내고 있었다. 그녀는 불안한지 어쩔 줄 몰라하며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시선은 불안정하게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고, 얼굴에는 핏기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런 하시모토의 모습에 기사가 물었다.

“면접 늦었어요?”
“앗, 네. 어떡하면 좋죠?”

그녀는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그러자 기사가 빙긋 웃으며 하시모토에게 말했다.

“빨리 갈 테니 그렇게 있지 않아도 돼요.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씩씩하게 말하긴 했지만 역시 불안한 탓인지 하시모토의 목소리는 조금씩 작아지고, 그녀의 입술에서는 한숨이 새어나왔다. 겨우 건물 앞에 도착하자 그녀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기사에게 쥐어주었다. 

“잔돈은 안 주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택시를 보내고 허둥지둥 건물의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면접장으로 향했다. 마침 그녀의 이름을 호명하는 소리가 들렸고, 하시모토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 때 그녀의 기척 때문에 먼저 와 있던 남자가 하시모토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녀와 잠시 눈이 마주쳤다가 고개를 돌려 면접관을 바라보았다. 하시모토는 날카로운 남자의 시선에 몸이 굳었지만 면접관의 앞에 앉아 면접관의 말에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이것저것 말실수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그녀와 달리 남자는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그리고 능숙하게 대답해 나갔다. 보나마나 불합격이겠구나, 싶어진 그녀는 면접장을 나와 느릿하게 걸었다. 택시 기사가 그녀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줬건만, 아무래도 썩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고 하시모토는 생각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방을 두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하시모토는 그대로 주저앉아 돌이 되고 싶어졌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나 한탄하며 가방을 받아들려는데, 옆에서 함께 면접을 보았던 남자가 그녀의 가방을 들고 있었다. 면접에 정신이 없어 제대로 보지 못했던 남자의 얼굴은 상당한 미인이었다. 전체적인 체구는 분명 남자였지만, 긴 속눈썹과 반짝이는 초록빛의 눈, 그의 눈 만큼이나 초록빛이 감도는 머리카락이 그녀로 하여금 그러한 생각이 들게 했다. 남자에게 미인이라는 표현은 상당히 실례라고 듣기는 했지만 그녀의 입밖에 결국 내뱉고야 말았다.

"예쁘다."

남자는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곧 그게 자신을 향한 말임을 깨닫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에 하시모토는 또 한 번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알아채고 곧 사과해왔다.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여전히 남자는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반응에 찔끔,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애써 참으며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들어 제 품에 안았다.

"그리고 가방 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러다 허리를 굽혀 급히 인사를 하고는 건물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런 하시모토의 모습을 보던 남자는 못마땅해하던 표정을 거두고 중얼거렸다.

"예쁜 건 그 쪽이었던 것 같은데."

한편 하시모토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곧장 제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누워 하루를 정리했다. 그러니까, 7시에 일어나야 했던 걸 8시에 일어났고, 구두를 신고 뛴 탓에 발뒤꿈치가 살짝 까졌으며, 면접 때는 면접관이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내는 데 너무 오래 걸렸고, 가방을 두고 온 데다 그걸 맡아준 사람에게 굉장히 실례되는 말을 하고 말았다.

"난 틀렸어. 불합격일거야."

하루종일 있었던 일에 결국 설움을 참지 못한 하시모토는 그 자리에서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화장이 번져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물론 다음날 그녀는 꼼짝없이 퉁퉁 부은 눈으로 식구들을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 면접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하시모토는 바들거리는 손가락으로 열심히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눈은 모니터를 향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명단에 오르내리고 있는 동안 제 이름이 나오지 않아 그녀는 당연히 불합격이리라 생각하고 커서를 움직여 아래로 죽 내렸다. 그러다 문득 보이는 이름에 하시모토의 눈이 순간 빛났다.

"이거, 나잖아?"

아무리 눈을 비비고 손등을 꼬집어도 틀림없는 그녀의 이름이었다. 게다가 생년월일마저 그녀의 것이었다. 하시모토는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질렀다. 

"붙었어!"

가족들이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환호성을 내지르며 하시모토를 축하해 주었다. 그녀의 오빠들은 기념이라며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자며 값비싼 식당에 그녀와 부모님을 데려가기까지 했다. 하시모토는 그 날 하루종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큰 오빠의 기타 연주에 맞춰 작은 오빠가 노래를 불러주었고, 부모님은 자랑스러운 딸이라며 그녀를 무척이나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시간은 또 흘러 입사 첫 날이 되었다. 이번에는 꽤나 꼼꼼하게 준비를 마치고 건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러자 먼저 타 있던 사람 중에서 무척이나 키가 큰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키가 크고 머리카락이 초록색인 남자. 그의 모습에 하시모토는 반갑다는 듯 아는 체를 해 왔다.

"안녕하세요! 전에 가방 맡아주신 거 정말 감사했어요. 오늘부터 영업부에 들어온 하시모토 유메예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미려니 남자는 물끄러미 그녀의 손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민망해진 하시모토가 손을 거두려 했고, 남자는 그 모습에 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미도리마 신타로입니다. 오늘부터 저 역시 영업부에 입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시모토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지막에 나온 말투가 상당히 특이했다. 그러니까, "~하는 것이다."라는 말투에 웃음이 터져 또 실수를 할 것 같아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어쩐지 제 입사 동기가 꽤나 재미있는 사람일 것 같다고 하시모토는 생각하고 있었다.

bottom of page